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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 "호남"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한반도 最古의 방조제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8-09-20 조회수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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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를 통해 본 한민족 고대 농경문화 연구


                                                    우대한* 국학박사
  
   머리말
一. 도작문화 역사
   1.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한반도 도작문화의 역사
   2. 농경문화의 발달과 한민족의 농경기술
二. 마한지역의 역사적 배경
   1. 마한의 역사성
   2. 고조선의 삼한
   맺음말

 

 

                               머 리 말

김제 벽골제는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고대 벼농사를 위한 3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고대 저수지는 정읍의 눌제, 전북 익산의 황등제, 충남 당진의 합덕지, 황해도 연백의 남대지, 경북 상주의  공검지 등이 있다.
이 고대 저수지들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벽골제의 시축년대는 『삼국사기』에 신라 16대 흘해왕 21년(330년)으로 되어 있고『삼국유사』에는 흘해왕 20년으로 되어 있다. 1년의 차이는 즉위년도를 원년으로 하느냐 다음 해를 원년으로 하느냐에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김제 지방은 신라의 영토가 아니라 백제 또는 마한의 땅이었으므로『삼국사기』의 기록은 후대 신라의 역사 위주로 기록된 결과이다.
 벽골제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제방의 길이만 1800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의 길이로 환산하면 최소 2km가 넘는다. ‘호남’이라는 말은 호수의 남쪽인데 벽골제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 주위 둘레는 최소 10km가 넘는다. 약 1,700년 이전에 축조된 저수지 치고는 규모가 매우 크다. 이는 당시 벼농사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 등은 현재 저수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제천 의림지는 지금도 저수지로 활용되고 잇다. 제천 의림지 또한 약 2,000년 전 원삼국 시대(삼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정읍에 있는 눌제(訥堤) 또한 삼한(마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벽골제, 눌제와 함께 국중삼호(國中三湖)로 알려진 익산의 황등제도 삼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현재 남아있는 저수지는 삼한 시대와 삼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저수지가 최소한 삼국 시대 이전에 축조되었다면, 도작문화(벼농사) 또한 매우 이른 시기부터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대 초반에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도작문화 연대는, 볍씨 화석 또는 탄화미의 발견으로 인한 과학적 증거로 밝혀졌는데 최고 1만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더 오랜 탄화미가 발견되므로써, 한반도에 거주하던 우리 조상들은 인류 역사 최초로 벼농사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가 정착한 시기와 농경문화는 연대가 같다. 따라서 인류가 정착하면서 이루기 시작한 농경문화의 시원 또는 최고(最古)의 도작문화 흔적을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一. 한민족의 도작문화

   1.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한반도 도작문화의 역사
     (소로리 볍씨화석을 중심으로)

인류가 수렵생활에서 일정한 장소에 정착을 시작한 것은,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부터다. 수렵생활을 하지 않고도 농업기술로 얻은 농작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얻고 있는 농작물 중에서 쌀은 인간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농작물이다. 나아가 인류가 획득한 농업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가 벼농사라 할 수 있다.
벼농사는 다른 밭농사 작물에 비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당연히 먼저 발달했을 것이다. 우연히 벼를 발견한 인류는, 벼농사기술을 발달시켜 안정적인 주식, 쌀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 쌀을 생산하므 벼농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시작했을까? 정황상 벼농사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2천년 대 이전에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발견된 1만 5백년 전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볍씨 관련 고고학적 연구는 어느 정도일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쌀(벼)과 관련된 자료는 1920년대 김해 패총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쌀은 기원전후에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재배되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여주 흔암리 주거지에서 기원전 10세기 경의 탄화미가 다량 출토되어 우리나라 벼농사의 시작이 일본보다 앞선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평양 남경과 부여 송국리 유적 등에서도 탄화미가 출토되었으며, 하남 미사리·서산 휴암리·안면도 고남리·승주 대곡리·합천 봉계리·거창 대야리·울주 검단리 등등의 여러 유적에서 토기바닥에 볍씨 자국이 찍힌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논산 마전리에서 청동기 시대의 논이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에 이미 벼농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한편 출토된 볍씨나 볍씨 자국은 그 형태가 단립형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쌀과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최근 충북 청주시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시대의 토탄층(연대

:12,500BP~14,800BP)에서 볍씨(japonica 형과 indica 형)가 발굴되고 그 이전의 층에서는 유사벼가 발굴되어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소로리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는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로 보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진화.전파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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