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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삼일사상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9-09-03 조회수 :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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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삼일(三一)사상

국학박사-우대한

 

 

. 서론

. 나철과 삼일사상의 원형 제시

. 서일 · 윤세복과 삼일사상의 확립

. 강우 · 이용태와 삼일사상의 발전

. 맺음말

 

국문초록

단군조선이 쇠퇴하면서 한국선도의 전통은 차츰 그 한민족 전통 철학으로서 빛을 잃어갔다. 특히 삼국시대 이후 중국에서 수입된 ··에 밀려 퇴조 일로를 걸었다. 한국선도는 근대 이후 민족종교 방식으로 소생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백두산 선도단체 계열인 백봉교단으로부터 선맥을 이어받은 대종교는 한국선도 고유의 전통사상과 수행법을 올곧게 이어받았다.

대종교의 핵심 사상은 삼일사상이다. 한국선도의 원형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삼일사상은 매우 중요하다. 존재의 본질을 로 보고 그 일기(一氣·三氣)’로 바라보며, ‘을 이루고 있는 존재의 세 차원으로 ··’, ‘··삼원을 제시하는 삼일사상이 대종교의 중심철학이며 선도의 핵심 수행론이다. ‘··삼원은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된다.

대종교의 삼일사상은 나철과 서일 및 김교헌, 윤세복 등 대종교 초기 지도자들이 보여 주었던 한국선도 수행의 원형인 성통공완조천의 삶에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한 대종교 초기 지도자들의 수행은 선도의 삼일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종교의 삼일사상은 한국선도 전통 부활이라고 부르기에 족하고 삶의 중심철학과 생사관이 뚜렷하지 않은 현대인에게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소중한 귀감이 되어주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나철과 서일이 보여준 조천과정은 전형적인 선도수행으로 주목된다.

한국선도는 인간이면 누구나 지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을 통하여 심신이 맑아지면 이미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과 만나게 되고, 그 신()을 만나면 신()의 속성인 사랑()과 지혜()와 힘(-창조력)을 자연적으로 회복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는 천부경사상에도 나타나듯이 인간은 일() 또는 일기(一氣)에서 비롯된 천··인의 삼()으로 분화된 실체이며 인간의 상··하단전은 천··인을 상징한다. ··인으로 분화된 인간은 지감.조식.금촉 수련으로 성통하고 공완을 거쳐 조천 과정에 이르는데, 이 과정을 삼()이 일(), 일기(一氣)로 화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로 화한다 함은 영혼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를 천화(天化)’라고도 한다. 이것이 삼일사상의 핵심이다.

주제어 : 삼일사상, 한국선도, 대종교, 성통, 공완, 조천, 삼법수행, 지감, 조식, 금촉

 

 

 

. 머릿말

정통 한국선도의 가장 큰 특징은성통(性通) 공완(功完) 조천(朝天)’으로 이어지는 수행문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행목적을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사상으로 명확히 표명하고 수행의 지침서인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의 공식 수행지침서 또는 경전으로 채택한 점,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의 삼법수행을 활용한 점, 삼성(三聖:환인·환웅·단군)으로 대변되는 선도스승의 전통, ·삼론(·三論) 또는 삼일(·)철학으로서의 사유체계 등은 한국선도 여부를 판가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구한말 한국선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수행단체들이 민족종교 형태로 등장했다. 격동기의 구한말과 일제하에 근대 민족종교를 창시했던 단체들은 공통적으로 광제창생(廣濟蒼生)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내세웠다. 이 단체들은 한국 근대사에 새로운 전환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조 말엽 최제우(18241864)의 인내천사상, 강증산(18711909)의 후천개벽사상, 박중빈(1891943)의 법신불 일원상사상, 갱정유도(更定儒道) 강대성(18891954)의 일심교(一心敎)사상 등은 사상적으로 한국선도의 오랜 사상적 토양 하에서 등장하였기에 각각 나름대로 특색을 갖추면서 도 한국선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단체들이다.

민족종교 중에서 한국선도의 전통을 가장 원형으로 받아들인 단체는 대종교다. 1909115일 대종교가 중광된 이래 나철이 조천한 1916815일까지 8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수십만의 신도가 생겼고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큰 축을 형성했다. 대종교가 짧은 기간에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대종교 신도들이 단군을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한국선도 고유의 심신수행 문화 및 전통사상과 철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대종교를 중광한 홍암나철과 초기 지도자들은 물론, 신도들도 백봉교단에서 전수해준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수행에 매우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수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삼법수행이다. 삼일사상은 요체는, 모든 우주 만물은 일()에서 나와서 삼(), 즉 천··인으로 분화되어 다시 일()로 돌아가는데, 인간은 삼(천지인, 영혼백)을 완전하게 받았고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감-조식-금촉 수행과 성통-공완-조천을 통해서 혼이 완성되어 다시 일()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 근대의 선도와 대종교의 성립

1. 근대의 선도

구한말 성리학 이념이 시의성(時宜性)을 상실하게 되면서 조선은 국내외적으로 격동기를 지나고 있었다. 서구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기존에 성리학에 의해 이단으로 억압받아온 선도, 도교, 불교, 서교(西敎)가 양성화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정신혁명이 필요하다는 각성의 분위기가 팽배했고 대한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이 중화 사대주의였다는 깊은 자각이 일어나면서 민족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사상적 혼란기를 맞이하여 특히 한국인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사상은 바로 선도였다. 선도는 한국인들 스스로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의식의 심층부에 자리하고 있었고, 사상적 혼란기에는 의식의 중심자리에 있던 것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자각은 주로 민족종교 형태로 나타났다. 19세기 말, 민족종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한 인물들이 다수 나타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즈음 선도의 영향을 받은 민족단체들은 1860년대에 시작된 최제우의 동학, 1880년대의 김항의 정역(正易), 1900년대 강일부의 증산도(甑山道), 1910년대 나철의 대종교(大倧敎), 1916년 박중빈의 원불교(圓佛敎), 1929년 강대성의 갱정유도(更正儒道) 등이 있는데 다양한 민족종교 형태로 등장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종교는 외형적으로 보면 각기 다른 사상과 방편을 내세우고 있는 듯하나 그 근본은 모두 수천 년 동안 면면히 흘러왔던 우리 민족의 정신적 얼과 토양이 바탕이 된 것이며 우리의 역사상 가장 어렵고 불행했던 시대로 인식되고 있는 일제하에서 절망 속에 방황하는 민중들에게 구원의 희망철학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민족종교를 살펴보면서 대종교를 제외한 민족종교 및 단체는 선도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한국선도의 핵심경전인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경전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고 조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법, ·철학, 그리고 선도의 핵심원리인 성통공완조천사상과 삼성(환인·환웅·단군)의 선도 스승 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다.

 

 

2. 대종교의 성립

1900년대 초 선도 관련 단체와 지도자 중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단체와 인물이 바로 백봉신사와 그 제자들이다. 백봉교단은 백전과 두일백을 통해 총 세 차례에 걸쳐 나철에게 삼일신고,신사기,단군교포명서등을 전해준 인물이다.

백봉교단과 나철의 대종교는 중국의 도교적인 요소와 완전히 다르다. 나철은 도맥의 근원을 단군시대로부터 찾고 그 수행의 목표도 삼일신고』「진리훈을 토대로 하여 성통공완을 통한 홍익인간·재세이화를 구현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백봉교단이 1906년 두암 백전을 통해 나철에 전수해 준 것이삼일신고·신사기이다. 중국 도교는삼일신고와 연관이 없다. 따라서 백봉교단으로부터삼일신고가 전수되었다는 것은 백봉교단이 중국 도교가 아닌, 한국 고유의 선도수련 집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두암 백전이 이 두 권의 책을 나철에게 전해준 의미는,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한민족 고유의 사상체계를 알려주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백봉을 중심으로 한 신교교단은, 백두산을 수련의 근거지로 삼고 백봉에게 지도를 받던 33(혹은 13)이 뜻을 모은 한국선도 계열의 비밀결사 단체로 추정된다.단군교포명서를 나철에게 전해준 백봉교단은, 불교와 유교로 거의 없어질 뻔 했던 한국 고유의 전통선도 정신을 지키며 후대에게 물려주려 했던 사람들이다. 나철이 창교가 아닌 중광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배경을 알면 쉽게 이해가 간다. 동학의 최제우나 증산교의 강일순처럼 창교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백봉교단의 단군교에 입교한 일개 교인으로서 단군신앙의 연결자로 자신을 낮춘 것이다.

관직에 있던 나철은 1901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신회를 조직했던 42(1904년 경)까지 낙향하여 구국의 대망을 품고 제석산을 오르내리면서 입산수도했다. 그의 유족과 벌교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급제(나철)가 입산수도했던 산이 제석산이라고 한다. 나철은 산중에서 수도할 때 반드시 사방에 자를 부치고 수도했다고 한다. 입산수도할 당시, 순천 선암사 경월당덕민(擎月堂德旻)이 나철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불교와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나철의 제자가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는 나철이 단군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수행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나철은 1905년 경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190710년 유형을 선고 받았으나 1년 후에 고종의 특사로 풀려났다. 그해에 풀려나서 1908년 네 번째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적인 통로에 의한 구국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08125일 동경 개평관 여관에 머물고 있을 때 백봉신사의 제자라는 두일백이 찾아와 단군교포명서』․『신가집』․『입교절차를 전해주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국민에게 단군정신을 알리라는 재촉을 받았다. 그래도 나철이 반응을 안 보이자 4일 후인 129일 다시 찾아와 재촉하였다.

이 순간 나철은 무언가 모를 감동으로 온몸이 진동하였고 마음에는 활연히 大悟, 각성하는 상태에 놓였다. 그때서야 나라가 망한 이유가 정신을 빼앗긴 것에 있음을 깨닫고 정훈모와 함께 영계를 받은 뒤, 귀국하여 대종교 중광을 준비했다. 영계의 의미는 한국선도로 바라보면 스승을 통해 선도를 전승받았다는 의미다. 이 영계의식을 통해 나철은 백봉신사를 영적 스승으로 맞이하였다. 영계를 받은 나철의 의식은 스승과의 강한 영적 유대감을 통하여 크게 변화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종교 중광이다.

190925(음력 115) 자시(2301) 오기호, 이기, 김윤식, 강우, 최전, 유근, 정훈모, 김인식, 김춘식 등과 함께 서울 재동 취운정 8106간 초가집 북벽에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함으로써 단군교를 중광하였다. 나철은단군교포명서를 발표하면서,국조 단군이 창립했던 단군교는 몽골침입 이후 약 700년간 단절되었던 것을 구한 말에 다시 계승하였다고 천명하였다.

나철은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을 피하고자 191085일 교명을 대종교로 개명했다. 교명을 바꾼 직후,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 병탄되자 나철은 활동무대를 만주로 넓히고 1914513일에는 총본사를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이전하였다. 아울러 서울에 남도본사, 청파호에 동도본사 등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도 교구와 외도교구를 설치함으로써 교구제도를 확대개편하였다. 대종교가 세력이 확대되면서 많은 대종교 교인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당시에 양심있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은 독립운동일 수 밖에 없었다.

공완의 실천적 수행관으로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천명한 대종교 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종교 포교가 가장 시급했던 나철의 입장에서 포교와 독립운동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매우 위험한 일로 쉽지 않은 전략이었다. 따라서 나철은, 비교적 일제의 핍박에서 자유로웠던 종교활동과 독립운동을 포함한 정치활동을 외형적으로 분리하여 대종교를 포교활동을 일제의 감시로부터 피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 나철의 정교분리 선언이었다.

이러한 나철의 의도가 초기에는 성공하는 듯했으나, 결국 중광 6년여 만에 결국 일제로부터 사실상 불법단체로 낙인찍히게 되어, 나철의 실망은 매우 컸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대종교의 포교활동으로 수많은 교인이 생겼고, 나철의 가르침을 받은 수많은 제자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항일무장투쟁, 국학운동, 식산자강운동 등에서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겼다.

 

 

. 대종교의 삼일사상

대종교의 삼일사상을 논하기 전에 한국선도의 전통적인 삼일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선도의 핵심 키워드는 존재의 궁극점으로서의 ’, 그리고 에서 파생되어 나온 천··삼원’(‘’)이다. 이 삼원은 ··이라고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 ··으로 불린다. 이는 다시 의 아홉 차원으로 분화하는데 이를 ··이라고도 하고 ··이라고도 하고 ··이라고도 한다. , 모든 존재에 삼원(··정 또는 천··)의 차원이 내재해 있으며 삼원을 1) (모든 존재의 근본상태), 2) 삼진(··: 모든 존재의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 3) 삼망(··): 존재가 현상계에서 개별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상태), 4)삼도(··: 형상화되기 이전과 이후의 어울려진 상태), 5) 삼수행(지감·조식·금촉: 삼도를 삼진 상태로 되돌이키기 위한 수행)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선도는 을 체()로 보고 ()’을 용()으로 보고 있다. ‘의 속성은천부경의 시문(始文)시작되나 시작이 없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우주의 모든 변화가 내에서의 변화일 뿐으로 시작이나 과 같은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이며 끝없이 반복되는 속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존재의 궁극처인 ··으로 분화되어 세 차원으로 나뉘는데 이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하늘, , 사람이 아니다. 이 삼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현대의 선도에서는정보(또는·’), ‘질료’ ,‘기에너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 ‘0’의 세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국선도의 또 다른 특징은, 우주의 근원인()’일기(一氣)’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대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격신인 일신( )’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선도는, 우주의 실체가()’라는 인식이 주목할 부분이다. 기가 뭉쳐지면 물질이 되고 생명이 되며 형상이 되고 사물이 된다는 인식이 소위 우주의 실체라고 일컽는()’을 바라보는 한국선도의 기본 입장이이며 이러한 우주의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천부경이다. 한국선도는 우주의··삼원이 사람 속에도 똑같이 구현되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사람 속에 구현된 천··인 삼원을 논할 때 추상적으로 논하지 않고 인체 구조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인체의 상··하단전, 곧 삼단전 자리에 천··지가 구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세 개의 단전은, 뇌에 상단전, 가슴에 중단전, 자궁자리에 하단전이 그것이다. 따라서 인체의 상··하단전은 각각 천··, ··, ··, ··, ··방과 배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선도에서는 사람의 생명현상이 개인의 생명으로 시작되어 개인의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생명 현상에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 모든 생명이 우주의 생명원리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며 그 원리에 의해 생성, 진화, 발전, 쇠퇴, 소멸해 간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순환원리는 조화로서 이 조화의 원리가 살아있을 때 인간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우주는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며 이 조화의 3대 원리는공전과 자전의 원리,‘구심력과 원심력의 원리,‘공평과 평등의 원리로 설명된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국선도는 개인완성과 전체완성을 같은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선도가 추구해왔던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비전을 이루려면 개인차원에서의 깨달음은 의미가 없으며(성통) 깨달음의 대중화 즉, 집단적인 깨달음의 운동이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루어져야 하고 깨달음이 상식이 되어야 하며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선도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한국선도에서(삼원)’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의 근원 또는 존재의 본질을(一氣)’로 보고 이를 이루고 있는 존재의 세 차원인··(三氣)’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오랜 역사 전통에서 한국인들은(一氣)’,‘(三氣)’을 존재의 본질로 이해하면서도 표현하기로는 삼신하느님( , , )이라는 인격신으로 사용하여 왔다.

둘째, ‘삼원(三元)’의 구조 순서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에 배대되는을 가운데에 놓고 있다.

셋째, ‘··’‘삼원(三元)’이 인체의··하단전에 3개의 기적 결집체로 구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상단전인 머리에는천기(天氣)’가 구현되어 있고 중단전인 가슴에는인기(人氣)’가 구현되어 있으며 하단전인 배, 자궁은지기(地氣)’가 구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삼원이 본래 하나이기에 ··삼원의 다른 형태인··하단전도 본질적으로 하나로 보고 있다.

대종교의 삼일사상은 한국선도의 핵심경전인삼일신고의 삼일철학을 기본으로 하되 근대 대종교만의 독특한 해석이 가해지고 있다. 특히,삼일신고·진리훈이 대종교 삼일철학의 핵심이다. 따라서신리대전,회삼경,삼일철학역해종경사부합편,삼법회통,종리문답애국지사단암이용태선생문집등의 대종교 관련서들은 사상적 배경이삼일신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천부경역시 대종교의 중요한 경전인데, 전해진 시기는 1917년이다.이며 1975년에 와서야 공인되었고 1983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경전에 수록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초반신단실기신단민사이후 간행된 대종교 관련 출판물에는 모두천부경이 수록되었다. 대종교 교인 김용기가 1925년에 출판한단전요의, 역시 대종교 교인인 이시영이 1934년 출판한감시만어등에천부경이 실려 있는 것을 볼 때, 1920년대부터 대종교는 이미 천부경을 민족경전으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대종교는 한국선도와 달리 삼원을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시키는 점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나철의 삼일사상은, 백봉교단으로부터 받은삼일신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삼일신고를 주해한 임아상의 사상과 철학이 대종교 삼일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임아상의 주해를 검토해 봄으로써 대종교 삼일철학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대종교가 출간한역해종경사부합편에 의하면 임아상(任雅相)은 대조영의 칙명을 받고삼일신고주해서를 썼다. 발해시대의 문헌이 매우 드문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임아상의삼일신고주해는 대조영의어찬과 대야발의 서문과 함께 대종교의 삼일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라고 본다.

임아상은삼일신고를 해석하면서,‘·삼진귀일(三眞歸一)’,‘( )’밝음()’으로, ()글과 말씀(文言)’으로 해석했다.삼진귀일이란,삼일신고·진리훈에 나오는 인물 동수삼진 왈성명정(人物 同受三眞 曰性命精)’부분과 관계가 깊다.‘삼진이란 ··을 의미한다. 근원으로부터 내려받은··이 다시 근원인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임아상이 일신( )을 광명(밝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상징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 민족의 광명사상이 발해를 통해서도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 한국의 광명사상은 고조선, 고구려, 신라 등의 건국신화에서 살펴볼 수 있고 특히 광명사상은 환인에서 환웅으로, 환웅에서 단군으로 이어지는 천손의 계보를 보여주는 삼국유사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환인과 환응의()’이라는 음은환하다라는 의미와 통하는 것으로 밝음광명을 상징하고 있다.

임아상은 ()’이라는 것은 둘이 아니라 오직 하나라고 했다.‘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이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의 세가지 모습()을 성··정이라 하고 원((()으로 도상화했다. 임아상이 삼일신고주해를 통해서 주장하는 핵심은 우주의 근원인이 인간의 몸에서 성··정인으로 분화되어 있고 인간은 몸의 수행을 통해서 다시 근원인로 돌아가는 것이 삼진귀일이며 이것이 삼일철학이다. 그리고 이의 신격화된 것이 하느님( )이고 광명(밝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임아상의 삼일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아상은 대종교의 삼일사상의 뿌리를 제공하였다. 특히, ··정을 원((()으로 도상화하여 사상의 구체화, 도표화에 기여하였다. 둘째, 기복신앙을 비판하면서 공완을 강조하고 있으며 셋째, 수행에 의해서 깨달은 철인(哲人)을 성인(聖人)보다 위 단계인 하느님의 아래에 두고 있다. 임아상은, 깨달음이 선과 악의 상대적 가치를 넘어선 절대 경지에 다가간 사름으로 보고,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성인의 개념을 뛰어넘는 절대 진리 즉, ()와 합일된 인격체로서 영원불멸한 생명과 조화력을 갖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자성(自性) 즉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기 전인 임신 시기부터이미 골수(骨髓)에 내려와 계시며 이를 하느님의 고을( )이라 칭하였다.

하지만 임아상은, 성을 원(), 명을 방(), 정을 각()을 보고 있어, 성을 원(), 명을 각(), 정을 방()으로 보고 있는 한국선도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 ()을 각()에 대비시키면서 가운데 위치시키는 한국선도와 달리 임아상은 방()과 지()를 대비시키고 이를 가운데 위치시키는 것이 한국선도와 임아상의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대종교는 임아상의 이러한 해석을 그대로 묵수(墨守)한 것으로 보인다.

, 백봉교단으로부터 전해진삼일신고를 주해한 인물이 임아상인데 그에 의해서 방향 지워진 천··인 사상이 대종교의 천··인 사상의 기본이 되었다. 특히 임아상의 천····각의 도상 해석은 대종교에 그대로 전승되어 지금까지 변함없이 대종교의 교리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교리는 나철, 서일 등 대종교 초기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이후에 저술된 대종교 교리서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 한국선도와 대종교의 삼일사상 비교표

구분

한국선도

대종교

차이

천부경

천부경삼일신고를 배대하는 방식이 다름.(차이가 있는 부분은 진한 색으로 표시)

삼일신고

없음

없음

없음

 

다음으로 나철의 삼일사상에 대해서 살펴보기도 한다. 1916년 조천한 나철은 생전에 현재 대종교의 주요 경전인천부경을 접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 백봉교단으로부터삼일신고신사기를 전해 받았다. 나철은 이삼일신고신사기두 권의 책은 나철이 대종교의 삼일사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철이 저술한신리대전의 내용을 보면,삼일신고신사기가 많이 참고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삼일신고는 순수한 선도사상 교리서인 반면에신사기는 역사적인 내용이 가미된 선도교리서다.신사기에는 환국의 통치자인 환인을 조화주로, 신시배달국의 통지차인 환웅을 교화주로, 단군조선의 통치자인 단군을 치화주로 명명하고 있다. 나아가 환인·환웅·단군을 삼신으로 보고 있다. 나철은 대종교가 실질적으로 선도단체이지만, 시류상 어쩔 수 없이 종교의 형식을 갖출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백봉교단이전해준삼일신고·신사기두 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상 인물을 삼신 즉, 조화주·교화주 ·치화주로 신격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신리대전을 연구하면 보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철은삼일신고』「신훈의 일신( )신사기삼신( )을 연결, 정리해서 저술했다. 나철은신리대전에서( )’한얼로도 표현하고 있고 한얼의 세 가지 모습인 천··인을 환인(桓因)과 환웅(桓雄)과 환검(桓儉:檀君)의 세 신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환인과 환웅과 환검(단군)을 각각 조화신(造化 ), 교화신(敎化 ), 치화신(治化 )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종교는 삼신일체( 一體)의 한얼님을 주체로 하는 신관( )을 가지고 있다.

대종교의신관일신을 체로 하고삼신을 용으로 한삼신일체신관이다. 지고지상의 한얼은 환인·환웅·환검(단군)으로 나타나 조화·교화·치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대종교의 삼신인 환인·환웅·환검(단군)단군설화의 환인·환웅·단군의 우리말 표현으로서, 역할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역사성을 지닌 설화와 종교적 교리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 대종교의 성통에 대한 인식과 삼법수행론

나철이 1906년 백봉교단으로부터 건네받은삼일신고진리훈에는 지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에 대한 원리 외에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나철 이하 초기 대종교 인사들이 대부분 선도수련을 했음이 나타나 있으므로 대종교 초기 지도자들의 삼법수행 연구는 자못 그 의미가 크다. 백봉교단의 삼법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 또한 드러난 것이 없다. 다만 백봉교단이 백전을 통해서 나철에게삼일신고를 가장 먼저 전해준 것을 볼 때, 그들은삼일신고』「진리훈에 바탕을 둔 한국선도 고유의 지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봉신사가 백두산에서 수도에 정진하여 성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기록과 백두산에서 10년간 기도 끝에 성통(性通)의 경지에 이르러, 한배검의 묵계를 받아 석함 속의삼일신고를 얻었다는 기록, 태백산 대숭전에서 13인이 백봉신사를 배알하고 선도단체의 스승으로 모신 것 등을 볼 때 백봉교단은 삼법수행을 포함한 한국 고유의 선도를 집중적으로 수행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나철이 삼법수행을 강조한 기록은 1916815일 구월산 삼성사에서 조천하기 전에 지인인 소운 황병옥에게 남긴 유언에도 잘 나타나 있다.삼일신고』「신훈진리훈에 나오는자성구자 항재이노지감 조식 금촉수련을 언급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삼법수행에 정진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나철은, 대종교의 모든 신도는 삼법수행에 정진해야 함을 강조했다. 나철이 지은 중광가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工夫한 형제자매 삼법(三法) 몬저 세우되

한배의 소리긔운 밖곁에 치 말라.

네신부(神府) 공경하라. 네영대(靈臺) 맑히어라.

玄玄精一하면 하늘사람 한 지추.

 

이러한 수행을 통하여 나철의 사상은 대종교 중광 전에 가졌던 우국적 분노가 대종교 중광 이후에 세계주의 이념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은 대종교 교리관 자체가 조화와 통섭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고, 대종교의 교의 또한홍익민족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홍익인간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나철이다른 교인을 달리 보지 말며 외국 사람을 따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나 "자신의 순교를 민족이나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으로 내세운 것, 모든 종교의 근원을 하나로 본 것, 등이 동일한 가치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나철이 한국 선도수행을 복원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치적 중의 하나는 개천절과 천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나철은 191469일 당시 총전리였던 강우를 천산(백두산)에 보내어 제천의식을 대행하게 했다. 제천의식은, 한국선도의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삼일신고·천궁훈이나진리훈에 나타나 있는 경천(敬天)사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개천행사와 제천의식이며 천제의식 자체가 수행의 핵심이다.

대종교와 한국선도의 삼법수행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종교의 삼법수행은 한국선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삼일신고』「진리훈을 바탕으로 지감·조식·금촉 수련을 수행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고 환인·환웅·단군을 각각 조화주·교화주·치화주 삼신( )으로 모시면서 천제의식을 수행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다만 한국선도에서는천부경삼일신고를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시키지만 대종교에서는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대종교에서는 이용태가··을 각각 머리와 배(), 다리()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4] 대종교의 삼법수행론과 인체 인식

구분

한국선도

대종교

비고

천부경

한국선도에서는천부경삼일신고를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시키지만 대종교에서는 인체의 상하단전에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 이용태는 제외)

삼일신고

인체

다리

 

 

. 대종교의조천에 대한 인식

앞서 한국선도 수행의 성통공완조천에 대해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수행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조천이다. 조천은 현대에 이르러천화라고도 표현하고 있는데조천의 사료적 근거는삼일신고. 나철이 백봉교단으로부터 건네받은 책인삼일신고에는 한국선도의 수행관인 성통공완조천사상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나철은삼일신고·진리훈의 삼법수행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따라서 나철 또한 수행의 궁극적 목표를 조천으로 삼은 것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증거가 나철의 생전 어록이나 저술에 다수 남아있다. 나철의 영향을 받아 나철을 따르던 많은 교인과 제자들도 나철의 생사(生死) 전과정을 성통공완조천으로 인식했다. 이는 김교헌이 펴내고 윤세복이 번역한 나철의 마지막 행적 기록서의 제목 자체가홍암신형조천기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나철은 1916815일 생을 마감하면서 유서와 편지 등을 남겼는데 그 중에 대종교 인사들에게 남긴 유서가이세가(離世歌)인데 총 3절로 되어 있다. 그중에 3절이 조천을 의미하는 내용의 글이다.

 

萬德門 들어가서 人間善惡 여짜올 때

奸詐不義者 懲治하야 다 悔改

寃痛微弱한 자 保全하야 다 强盛

殺伐風塵 다 쓸고 一同道德世界 새로 열게

사랑토다 밋브도다 우리 兄弟姊妹들아

兄弟姊妹 몯은 罪惡 오날 이 몸이 다 代身 가니

한 마음에 성통하여 늘히 천궁(天宮)에서 즐깁시다

 

만덕문(萬德門)이라 함은,삼일신고』「천궁훈에 나오는 문귀로서천궁(天宮)’에 존재하는 1만개의 덕()으로 이루어진 문()을 의미한다. 역시천궁이란 (하느님)이 거주하는 장소를 이른다. 나철은,삼일신고가 이른대로성통·공완한 자는 (하느님)이 거주하는천궁으로 회귀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철은 김교헌에게 남긴 유서에도 그의 조천사상을 피력했다. 대종교 대도가 진실한 가르침이니 우리도 삼일의 도를 닦아 반드시 근원인 신( )의 자리로 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나철은 죽고 삶이 몸덩이에 있지 않고 신의는 오직 신명이 증거한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 유언에서 나철은 죽고 사는 것의 정의(定義)가 육체에 있지 않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조천의 실체는 육체가 아니며 반진일신(返眞一 )삼진, 인간에 내재한··( )’의 근원인( )’로의 회귀를 의미함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삼일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나철의 구월산 삼성사에서의 조천은, 대종교의 삼신일체 사상과 성통공완조천으로 이어지는 한국선도의 전통사상과 연관해서 극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나철은 우주 만물의 근원인일신( )’ , ‘삼신( )’으로의 회귀를 위해서 현상계의 삼신( )’이 모셔져 있는 구월산에서 조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나철과 대종교를 연구한 여러 학자는, 나철의 자진 순교가 대종교 신도들이 더욱 단합하여 구국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더욱 강한 항일독립운동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순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필자는 보다 넓은 차원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육체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할 일이 끝났으므로 미련없이 육체의 생을 마감한 것, 즉 한국선도 수행의 마지막 여정인 조천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일은 나철의 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계승한 인물이었음은 앞서 살펴 본 바이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서일은 나철의 삼일사상과 삼법수행 및 한국선도의 핵심 수행과정인 성통공완조천을 확연히 깨치고 있었을 것이다. 서일이 생전에조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많다. 서일은 이회삼경의 마지막 9,‘귀일(歸一)’에서 수행의 마지막 종착점을 귀일조천으로 보고 있다.‘귀일(歸一)’에서철지화행(哲之化行)이 수유여시종종묘법(雖有如是種種妙法)이나 급기공완(及其功完)하야는 경귀어통(竟歸於通)하나니 시지위반진(是之謂返眞) 일신( )이니라.”라고 설파했다.

이는 깨달은 철인이 변화 성장함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공완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마침내 통함으로 돌아가나니(근원으로 통하니) 이를 일러 참함으로 돌이켜 하늘(근본)과 하나가 된다.”라고 해석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서일 역시 나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죽음으로 대종교의 한 단계 도약을 도모하고 흩어진 항일독립군 진영에 대한 각성과 합심대도로 항일독립운동을 더욱 강하게 촉구함을 꾀하고자 했다고 보거나, 동시에 부하들이 자신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비통함과 절망감에 더 이상의 독립운동에 대한 용기를 잃었기 때문에 자진했다는 주장 등으로 서일의 자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나철의 경우와 같이 서일의 죽음을 한국선도 고유의 수행과정인 성통 공완 조천 과정으로 바라본다. 서일은 항일무장노선을 취해왔던 자신의 길이 당시의 시점에서 시대조건과 맞지 않아진 현실을 직감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현재 대종교와 관련되어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나철과 서일의 죽음이 독립운동을 위하여 대종교 신도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차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두 인물의 순교를 단순히 독립운동 차원으로만 시각을 좁히지 말고 한국선도 수행의 마지막 여정인조천으로 적극 적으로 확대해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나철과 서일 모두 공완의 길을 가다가 자신의 임무가 이번 생()에서 끝났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미련 없이 육체적인 삶을 벗은 것으로 보인다. , 조천을 위한 적극적인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맺음말

본고는 한국선도의 수행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대종교의 삼일사상을 고찰한 글이다. 고조선 이후 한국선도의 수행전통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하지만 문헌상 최소한 발해시기까지 전통적인 삼법수행이 전해진 것은 확실하다. 지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으로 대변되는 선도수행은, 발해 대조영의어제삼일신고찬이나 문왕의삼일신고봉장기등을 살펴볼 때 문헌상 발해시대까지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부식에 의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실패에 결정적 타격을 입은 국학파는 빠른 쇠퇴를 가져왔다.

이에 더하여 억불숭유정책을 정책의 최고 기조로 한 조선의 건립은, 한국선도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기층민의 저속한 문화로 치부되어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왔으나, 한국선도의 전통적 수행과정과 고유한 철학 및 사상은 잊혀져 갔다. 다만 기층민 사이에서 무속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구한말 제국주의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통한 주체적 대응을 위하여 많은 단체가 민족종교 형태로 활동하였다. 당시 등장한 대부분의 민족종교는 한민족 고유의 전통 수행문화인 한국선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대종교는 한국선도의 특징과 정통성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계승한 단체로 볼 수 있다. 대종교는 백두산 계열의 선도단체인 백봉교단의 지원으로 1909년 나철에 의해 중광되었다. 이렇게 한국선도는 근대에 대종교라는 이름으로 극적인 부활을 꾀하였다. 대종교는 구한말 당시 많은 민족종교가 창교를 주장한 반면에, 나철은 단군교(후에 대종교)중광을 내세웠다. 나철 자신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을 이 시대에 다시 부활시킨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광이라는 용어를 활용했다.

백봉교단으로부터 건네받은삼일신고로 인하여 대종교는 한국선도 수행의 핵심과정인 성통공완조천의 전통과 지감조식금촉의 삼법수행을 되살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선도 최고의 수행법인 제천문화와 개천절을 부활시켰으며 홍익인간재세이화 정신을 부활했다. 나아가 환인환웅단군을 삼성을 선도의 스승으로 다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광복 후에 무차별적으로 유입된 서구 외래사상에 의해 한민족 고유의 전통사상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나철은 단군교 중광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한국선도의 고유한 삼법수행 특징과 사상·철학을 부활시켜 이를 제자와 교인들에게 전수했다. 나철이 부활시킨 한국선도의 중요한 특징은, 첫째로 제천의식의 부활이고 둘째, 한국선도에서는 물론 역사적으로 삼성(三聖)으로 존경해 온 환인·환웅·단군을 종교차원에서 삼신( )의 자리로 복구시켰다. 셋째, 한국선도의 고유한 사상과 수행법인 삼일사상과 삼법수행을 부활시켰다. 삼신일체( 一體)로 대변되는 삼일사상과 지감·조식·금촉을 구체적인 수행방법으로 한 삼법수행은,천부경삼일신고』「진리훈을 그 근거로 하는데, 특히 삼법수행은역해종경사부합편에 의하면 최소한 발해 대조영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수련법이었다. 넷째,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3대 경전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한국선도의 전통사상과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제천의식, 삼일사상, 삼법수행, 삼성(三聖)의 한인·한웅·단군 삼신사상, 그리고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3대경전의 경전 채택 등은 한국선도의 정통성 계승여부를 판가름하는데 핵심적 판단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종교는, 비록 일본의 영향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종교라는 형태를 띠고 단군정신을 부활시켰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고유한 전통사상인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선도수행 즉, 삼법수행 단체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등에 나타나는 일()의 분화된 모습 즉, 성명정, 천지인, 영혼백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삼일수행을 통해서 다시 일()하는 것이 대종교 삼일사상(三一思想)의 핵심이다.

 

 

 

참고문헌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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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符經

三一

參佺戒經』』

大倧敎經典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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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aeJongGyo's SunDo three Discipline Theory

 

DaeJongGyo that succeeded Korean SunDo's tradition as it is performed the fierce resistance to Japanese colonial policy. Under the invasion of Japanese imperialism, the best GongWan功完(serving) was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We'd rather say it's natural phenomenon that DaeJongGyo carried out divers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s like armed struggle, and Gookhak movement including education and study of Korean history and language. Because one of the most important standards of evaluation in Korean SunDo is 'GongWan'(serving).

Due to Japanese cruel oppression and foreign ideas imported after GwangBok(liberation), DaeJongGyo couldn't grow much. Fortunately, Korean SunDo at present day is reviving as a form of mind and body training method. Modern humans who recognized negative side of material culture are curious to mental discipline.

In judging Korean SunDo's orthodoxy, there are some criterions to examine. First, they must adopt ChunBuKyung,SahmIlShinGo, and ChahmJunGaiGyungas main scriptures. And three disciplines-Jigahm止感, JoShik調息, and GeumChok禁觸-are suggested as training methods. SahmIlSaSang(Three-one Idea) that regards the essence of existence as 'One', 'IlKi一氣三氣'(One Ki Energy) and the 'One' has three dimensions of 'Chun(Heaven)', 'Ji(Earth)', 'In(Humans)' or 'Sung', 'Myung', 'Jung' is their main philosophy. Further, they connect these three elements 'Chun', 'Ji', 'In' to human's three DahnJons(upper, middle, lower DahnJon). They keep the master tradition which accept 'HwanIn', 'HwanWoong', and ‘Dahngun' as 'The Holy Three三聖’. They comprehend the whole course of life and death as the process of SungTong性通, GongWan功完, and JoChun朝天. And they have the spirit of HongIkIngan弘益人間 EhwaSeGai理化世界. These are main characteristics of Korean Sundo.

DaeJongGyo comes close to the original form of Korean SunDo mentioned above. Merely they don't regard 'One', the essence of being, to be 'IlKi(一氣 One Ki Energy). And they don't connect three elements, 'Chun', 'Ji', 'In' or 'Sung', 'Myung', 'Jung' to human body. These are different from Korean Sundo. But DaeJongGyo's early period leaders such as NaChul, SeoIl, KimGyoHeun, YoonSeBok showed us the original form of Korean SunDo discipline process of SungTong-GongWan-JoChun, which was enough to be called as the revival of SunDo tradition. They are by no means inferior to be precious exemplars for modern humans who live without definite life philosophy and idea on life and death.

NaChul and SeoIl's viewpoint of 'life and death' that describes death as GaGyung嘉慶(celebration) shows modern humans who are indulged in material culture what is the really meaningful life as a human and how to live and die. Being born, one realizes heaven's nature through discipline (SungTong), stakes all on performing the given mission(GongWan), and goes back to heaven daringly when the mission is done(JoChun). This is the model of SunDo discipline process led by DaeJongGyo leaders like NaChul and SeoIl in its early days. Certainly, their lives should be re-illuminated historically. Though NaChul restored DaeJongGyo, it couldn't blossom fully because of Japanese oppression and thoughts from abroad. Nevertheless it played an important part in defining the idea of our nation's education to be HongIkInGahn and reviving GaiChunJul.

In 1980's, Korean Sundo prevailed widely in the level of modern humans' mind and body health training by recovering its core, SunDo discipline. Its disciplines are spreading as 'the humanity recovery movement' which restores humans' original conscience through deep insight of 'One'(IlKi), the essence of being and 'the earth human movement'. In Korean SunDo's original discipline point of view(SungTong, GongWan, JoChun), the greatest GongWan in modern society can also be the whole world peace through the restoration of humanity.

These days' cruel and indiscriminate terror, individuals' and nations' extreme egoism, modern humans' frustration from infinite competition, increasing suicide rates, about one hundred thousand starved deaths a day in the middle of the biggest richness humans have ever had, and endless religious conflicts-the fundamental cause of all these is that we humans lost our good nature primarily gifted. As their basic solution, modern SunDo suggests 'the worldwide humanity recovery movement' to recover human nature endowed from Heaven. It is very timely in Korean SunDo GongWan point of view.

key words : Korean SunDo, SungTong, GongWan, JoChun, Three Disciplines, JiGam, JoShik, GeumChok, Three-One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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